여여얼굴

아가, 아빠가 운다.

여여얼굴 2009. 9. 27. 00:57

통일이야기 | 아가, 아빠가 운다

 

1. 


아가! 아빠 손에 손을 얹자.
사랑하는 우리 아가, 아빠 손에 손을 얹자.
연인을 만나 100일 꽃을 나누듯
100일 후 아빠 손에 손을 얹고, 하루 이틀.. 소망한 꿈을 꾸자.
1999년 8월 17일 아침, 너를 처음 알고.. 마음 기뻐 어깨춤 덩실덩실 추며,
널 기다린 여름과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 아름다운 계절을 엄마랑 함께 지내며,
짤막짤막 쓴 일기를 내놓고 2000년 4월 18일... 널 만났네.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태어난 해, 첫 걸음마를 내딛은 해,
뭍으로 백두까지 가고 싶은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 역시 첫 걸음을 디뎠네.
2000년 6월 13일.. 대통령께서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2000년 8월 15일.. 이산가족은 흩어진 가족을 만나고 흩어진 가족은 이산가족을 만났네.
아가야, 이 땅은 '분단'이라고 하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네.
'통일'이라고 하는 약, 한 알이면 될까..
그런 약을 만들기 위해 애끓는 밤을 지샜지만 무정한 세월 55년.. 그냥 지났네.
아가가 돌 지나고 10살 되고..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 그 세월 또 지날 것인가..
아직은 슬프게.. 남과 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아가, 아빠 손에 손 얹어 하루 이틀.. 소망한 100일 꿈을 꾸자.

"자랑스런 겨레, 통일.. 꼭 이룬다!
엄마랑 아빠에게 언제나 '아가'.. 우리 아가 볼을 어루만지며 울고 우는 날,
그 날은 다같이 춤을 춘다"고 꿈을 꾸자.


 
 

2.

 
아가! 아빠가 들려주고 싶은 詩 하나!
                                                시인 서정주 님..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푼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후에 뜻밖에 딴 볼 일이 생겨 이 신부네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푼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아가야,

슬프게.. 이 땅에는 '신부'보다 더욱 슬픈 사람들이 있어.
피란길에 춥고 배고파 아내와 아이를 청천강 가까운 친척에게 잠시 맡겨
50년 지나 만났다는 사람..
"능라도 모래사장 속에 손을 쑥 넣으면 조개가 한 줌씩 잡혀 끓여 먹곤 했지" 하며
그리움 사무친 사람..
"그 때는 열 밤만 자고 나면 돌아온다고 그랬잖아요" 해도

누굴 탓할 수 없는 사람..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

母子

夫婦

 男妹

..

아픈 가슴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다시 헤어진다.

떨리는 손 그 느낌 가실라 무섭게 헤어진다.

떨리는 손을 잡고 잡은 손을 놓지 못하네...

어떻게 하지.. 아가야!

아빠가 운다.
 

2000년 8월

글 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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