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얼굴

청계천 仰天

여여얼굴 2009. 5. 1. 22:49

 

 

청계천변에서 흔들리는 빨래줄을 우러러보다가,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치마 저고리를 만났고,

바람 따라 무정형의 무늬를 만들어내는 치마 끝선을 보았습니다.

 

가방에서 얼른 디카를 빼내어

그 아름다운 선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여기에 13컷 이야기로 펼쳐 놓습니다.

 

2009년 5월 1일

사진/글 여여

 

 

01

잎새 머뭇거리는 하늘가에서

나는 학과 같고

나는 물결과 같이 분홍 소망을 적었다.

 

 

02

오늘은

금방이라도 번질 것 같은 붉은 연정을

청계천 파랑에 담구었다.

 

 

03

내일은 사월 초파일,

임 맞으러 묵은 세월 씻어낸 빨래터

그 재잘거림을 하늘에 널었다.

 

 

04

목 감추고 긴 다리 수줍게 선,

학처럼

가녀린 모습을 냇물에서 보았다.

 

 

05

치맛자락 일렁거리는 그 조금도 부끄러워

행여나 뉘 볼까, 살며시 문 닫으려다

확 불어닥친 바람결에 마음을 들켰다.

 

 

06

어쩌나,

쿵닥거리는 떨림을 숨기려 하여도

문지방 밖의 일을 생각하니, 연지 화장마저 먹질 않는다.

 

 

07

애써 꽃단장 마치려나 하였더니

갑작스런 자동차 경적에 "에구, 놀라라",

옷고름은 또 언제 풀렸던가.

 

 

08

임 오는 소리였나,

뚜벅뚜벅 뚜우욱, 발걸음도 멈췄다.

슬쩍 내다보려니 내 하얀 속에 파동이 인다.

 

 

09

오셨는데,

이거이거 난 아직 마중 채비를 덜하였는데,

내 안에 술렁이는 동그라미 파문만이 크게 일어난다.

 

 

10

잠깐 멈춰 버선도 신어야겠는데,

내 안에서는 또 하나의 동그라미 파문이 일고,

급히 신으려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11

누군가 느껴지기에 우러러 보았더니, 내 임이다.

손을 내밀어 나를 잡아주는 임은, 온통 파랗다.

맨발에 속치마 드러내며 쳐다볼 새 없이 흘러왔건만, 내 임이 하늘이다.

 

 

12

 내 임, 하늘인 것을.

청계천 파랑처럼 출렁거리는 치마 위에 두 다리 곧게 내리고 선 저고리,

나는 그 한 마리 학과 같이 날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