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얼굴

봄입니다.

여여얼굴 2009. 3. 21. 09:53

봄입니다.


몇 해 전에는 참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올봄에는 전혀 그럴 기미도 없이 여름으로 훌쩍 넘어가려나 봅니다.

초딩 꼬마랑 집 밖으로 나오는 길에 산수유 꽃 이야기를 하였는데,

아무래도 그 꽃잎은,

여름으로 가는 채비를 급히 하려고

후두둑 노란 꽃의 눈으로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아마 봄비라도 지나가면 더욱 그러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겨울, 눈답게 내린 눈을 만나질 못했습니다.

정말 몇 해 전에는 3월 마지막 날에 봄눈이 내려,

노란 개나리 꽃잎과 참 아름답게 어울려 있는 그 하얀 모습에 반하였는데,

올해는 그냥

벚꽃이 피면 피는 대로 황급히 분홍 꽃의 눈으로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옆 사무실에서는 어제 에어컨을 설치한다고 무척 법석거렸으니까,

여름도 금방 와 있지 않을까,

어쩌면 봄비라도 내리면 여름일 줄 모르겠네요.

 

그 여름 끝나는 무렵에 시험을 치르는 것,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다가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꽃잎이 어떻게 피고 지든 차근차근 시험을 준비하였으면 합니다.

눈이 내리든 비가 내리든 님의 꾸미룩을 향하여 차근차근 로스쿨 전형을 준비하였으면 합니다.

 

 

정호승 님께서
"봄눈 내리는 날에는 애미가 울고 봄비 내리는 날에는 애비가 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시인의 詩를 하나 올립니다.

아버지

 

눈이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가난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

빚잔치를 하고 고향을 떠나
숟가락도 하나 없이 식구들을 데리고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만 쳐다보며
내 집 한 칸 없이 살아오신 아버지

눈이 오는 날이면 언제나
가난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

 

 

 

생각건대, 9 : 1 정도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2000 : 220 정도일 것 같네요.

내가 법대 입학하던 해에 딱 그만큼

아니, 그보다는 조금 많이 사법시험 합격자를 뽑았었습니다.

 

지금, 내가

초딩 꼬마녀석에게 '가난한 아버지'이나 행복한 것처럼

내가 법대를 진학하였던 시절에도 내 아버지 또한 가난하였으나 행복하였을 겝니다.

 

윤택한 생활인으로서 살아갈 것 같은 큰아들에 대한 꿈을 가졌던 것도 그러하였겠지만,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이

로봇회사 사장의 꿈을 키워가는 꼬마녀석을 위하여

내가 정직한 노동의 품을 팔고 있는 것인 마냥

그때 아버지는 무척 깊은 꿈을 간직하였을 겝니다.

 

꽃은 피어나야 꽃이지만, 꿈은 깨어나야 꿈이었음을 압니다.

 

사법시험 합격이나 로스쿨 진학의 꿈을 이룩하는 것만큼

"왜, 내 꿈은 변호사인가?"

한 번만 다시 자신에게 물어보면 그 꿈은, 결코 윤택한 생활인의 삶이 아닐 겝니다.

 

자기소개서에 작성하는 '그 꿈'을 망각하지 아니하고

추상적 꿈이 아닌 구체적 꿈을 향하여

공부할 게 있으면 조금만 더 공부해내는 철두철미 철상철하의 자신을 피어냈으면 합니다.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래도 가장 흔한 일인 '대여금 사건'과 같은 민사문제에 얽힌 주변 분을 위하여

사건을 종결할 때까지 도와 보십시오.

 

소장을 작성하면서, 준비서면을 작성하면서

리트 시험에 추리논증영역을 왜 필요로 하는지, 느낄 겝니다.

그리고 '변호사'라는 직업의 구체적 꿈을 세울 겝니다.

그때 비로소 9 : 1,

그러한 9에 해당하는 로스쿨에 진학하든

그러한 1에 해당하는 사법시험을 합격하든 그 준비의 과정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 구체적 꿈을 이룩하시길 기원합니다.

진심으로 님의 '꾸미룩'을 희망합니다.

 

2009년 3월 21일

 

여여